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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연대 - 제주 해안의 당당한 지킴이

속심해 2013. 8. 20. 21:03

 

 

제주의 봉수는 크게 오름 정상부에 설치된 봉수와 해안 구릉에 설치된 연대로 나눌 수 있는데

오름정상에 있는 만큼 봉수대는 50리 밖을 감시하고, 연대는 현장 가까이서 감시하는 역할을 하였다.

 
 

오늘날 정보통신분야의 눈부신 발달은 어제와 오늘을 구분시켜버리고 시간과 국경의 개념을 없애버렸다.  국내에 가정용 전화가 일반화되기 시작한지 불과 20년만에 화상 이동통신의 상용화를 눈앞에 두게 된 현대의 전쟁은 최첨단 장비가 동원되고 하늘에 위성을 띄워 적대국의 군사 위치와 이동을 몇 개의 버튼으로 화면을 통해보고 있지만 불과 백여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적의 침입 감지는 봉수에서 육안으로 직접 적을 확인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밤에는 불을 피우고 낮에는 연기로 저의 침입을 알린 봉수는 평상시에는 하나, 외지 선박이 나타나면 둘, 경계에 가까이 오면 세 개, 경계를 침범하면 네 개, 전투가 벌어지면 다섯 개를 올렸다.

제주의 봉수는 크게 오름 정상부에 설치된 봉수와 해안 구릉에 설치된 연대는 나눌 수 있는데 오름정상에 있는 만큼 봉수대는 50리밖을 감시하고, 연대는 현장 가까이서 감시하는 역할을 하였다. 

 

예를 들어 높은 고지에 있는 봉수에서는 먼 해상에 있는 배를 발견하고 그배가 표류해서 오는 배인지 적의 배인지는 연대에서 식별을 하였다.  그리고 연대는 직접 적과 대치해야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으므로 전투에 필요한 기능을 가질 필요가 있는데 북제주군 조천읍 신흥리에 있는 왜포연대의 내.외벽 시설은 이런 기능을 고려하여 축조한 예이다.  또한 급박한 상황에 대비해 전투에 유리한 위치에 3에서 4미터의 높이와 돌로 단단하게 축조되었다. 

 

이에 반해 봉수대는 일반적으로 돌로 쌓기 보다는 둥글게 흙을 쌓아올려 그 위에 봉덕 시설을 하였다. 그런 이유때문인지 연대는 지금까지 원형 그대로 보존된 것이 많아 23개소의 연대가 지방기념물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으나 봉수는 개발이 되거나 수풀이 우거져 일반인은 그 흔적을 찾기 힘들다.

 

별장 6인과 12인의 봉군이 조별로 돌아가면서 지키고 있던 연대는 제주해안선을 따라 설치되어 근처의 다른 연대와 유기적인 연락을 취하고 있었는데 조선시대의 문헌을 보면 그 조직적 짜임새가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었다고 한다. 이처럼 제주의 바다를 지키던 25개소의 봉수와 38개소의 연대는 1895년 봉수제가 폐지될 때까지 유지되고 있었다.  한경면 두모리와 외도동 연대는 사용되지 않은 이후에 도대(아이러브제주 3호참조)를 쌓아 미간등대로 이용하기도 했다.

 

봉수와 연대의 주변 백보내에는 봉화의 오인을 막기위하여 무당이나 통속적인 잡신제를 금하였는데 성산읍 신천리의 천미연대에는 칠십보 내외에 현씨 일월당이라는 무속 당이 있기도 하다.  최근에 한국 전쟁을 전후해 소실되었던 안덕면 사계리의 산방연대가 복원된다는 반가운 소식이 있었다.  산방산 동남쪽 등선에 복원될 산방연대는 하멜 표류 기념비와 월라봉 앞 해안, 송악산등과 인접해 있어서 문화 유산과 천혜의 절경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자료출처 : http://blog.daum.net/blueribbon

 

출처 : 자파리세상
글쓴이 : 자파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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