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문대할망
1
처음 하늘과 땅이 열리던 날에
제주 바다 생겨나고 그 바다 한가운데
불꽃 섬 하나 제주섬 솟아나고
이 섬에 설문대할망이 살았네
설문대 할망은 이 섬을 이 세상 제일가는 낙원으로 만들 결심하고
평평한 섬이 보기에 즐겁지 않았네
설문대할망은 치마폭에 흙을 담아
제주섬 한가운데 산 만들기 시작했네
치맛자락 터진 구멍으로 졸졸졸
흘러내린 흙 모아져 여기저기
오망조망 오름들 생겼네
허허벌에 높은 산 만들어 세우자
설문대 할망은 민둥산이여 생각에 잠그고
깊고 넓은 숲 만들기로 작정하였네
허리엔 지나던 구름 무심무심 걸리고
하늘 이고 망망한 바다 지켜보며
꿈꾸는 이 음성이여 천둥 번개 이마에 걸고
한 가닥 설문대할망은 꿈을 꾸었네
2
깊이와 넓이 짓는 것이 바다만이겠느냐
한라산이여 만둥산 만들 순 없었네
설문대할망은 들판에 금잔디 깔고 파릇파릇
삼동낭, 세비낭, 도체비낭도 파랗게
꽝꽝낭, 소낭, 멩게낭도 듬성듬성
층층이 깊이 재어 굴거리낭, 틀낭
넓이를 재어 족낭, 자귀낭,소리낭,동박낭
노가리,조로기,구상낭 푸르르르
높낮이 만들어 일천칠백이 넘는
나무와 풀 심고 보니 아름다워라
백록담엔 신선들 백록 타고 와서
신선놀이 즐겁게 낮잠자기 할 만하였네
설문대할망은 푸나무들 심고 나니
심심하였네 산바람 만들어
가지마다 걸어놓고
노래하는 새들 모았네
휘파람새 호오개굑 호오개굑 노래하게 하자
호오개굑 호오개굑 동박새도 날아들고
동박꽃이 온 섬을 하얗게 빨갛게 물들여놨네
뻐구기 노래 듣고 뻐꾹뻐꾹
와자자 눈뜨는 꽃들 계절 따라
눈과 귀와 가슴을 열었네
산바람 들바람 소리 가득한 들판엔
들까마귀 새까맣게 떼지어 날고 까옥까옥
계절 따라 새소리들 넘쳐놨네
노랑나비 흰나비 호랑나비 팔랑팔랑
종달새 휘파람새 노래불러 끼룩끼룩
새파랗게 바닷물결 흔들어놓으면
여름이 바다 끝에서 무더위를 밀어왔네 철썩철썩
가을날 참새떼 천지 가득가득 날아오르면
가을은 깊어져 섬사람들 이마에 땀방울 맺게 하고
바람까마귀떼 비상은 하늘 하나 캄캄하게
새하얀 눈 내리게 겨울을 몰아왔네
매서워라 하늬바람 눈보라 설쳐대는 겨울이여
설문대할망은 눈 덮인 산과 들이
심심하였네 다람쥐, 토끼, 노루,사슴 이곳저곳
오소리,두더지,멧돼지 풀어놓았네
호랑이,사자,여우,늑대 같은 짐승은
한 마리도 이 섬에 살게 하였네
여름날 심심하면 매미매미 매미 노래부르게 하고
저녁놀 내리는 저물녘 고추잠자리들 하늘 빨갛게 날렸네
사람 귀한 섬이여 아들을 오백이나 낳았네
오백 아들 먹여 키우자니 설문대할망은
똥고망이 찢어지게 가난하였네
가난가난 자식 키우며 평화 이루어 살았네
3
오백 아들 키우려니 설문대할망은
속곳 없는 단벌 치마저고리만 입었네
무명으로 석곳 만들기 시작했네
제주 바다 건너면 어떤 세상 있을까
가난한 섬사람들 무명 한 통이 모자라
모으고 모으고 섬 안에 있는 무명 다 모아도
마침내 설문대할망 솟곳 못 지어냈네
제주 바다 건너가는 연륙의 꿈은 산산산
가난하게 깨어져 절해고도
제주섬은 영원히 섬으로 남아
가난과 한숨이 땅이 되고 설문대할망은
한라산 베개삼아 누워
제주 바다에 두 발 담그고 참방참방
모진 세상살이 파도도 지어내고
그 세파 이겨내는 인내심도 길러내고
설문대할망은 아무리 가난 가난해도
아들 오백 키우며 섬사람들과 더불어
행복하였네 눈물은 어디서 오나
눈물의 깊은 세상 사랑으로 오느니
만물을 사랑하면 만물로부터 되레
사랑받는 서러운 이치도 가르치고
한숨은 지친 몸 모진 고통 이겨내느니
설문대할망은 한숨쉬는 법도 가르치고
4
설문대할망은 키 큰 자랑 은근히 하고
한라산 물장올이가 끝간데 없다고
섬사람들은 설문대할망에게 귀뜸하였네
그렇게 깊다던 용연도 발목에 차고
서귀포 서홍리물도 무릎에 찼으니
설문대할망은 그럼 가슴까지 찰까
한라산 물장오리로 성큼성큼 들어섰네
발목이 바져들고 다리가 바져들고 서서히
가슴이 바져들고 물장올이 푸른 물은
설문대할망 목까지 차올랐네
깊구나 점점 빠져 나올수 없었네
설문대할망은 점점 더 빠져들면서
제주 바다 아득히 끝간데
손금 죄 풀어 수평선을 지어내고
한마디 말도 없이 깊이 없는 물장올이
깊이를 만들었네 마침내
설문대할망은 눈물 한 방울로
이 세상 삶과 죽음의 깊이 찾아냈네
수평선은 제주섬 사람들 이때부터 풀풀풀
풀어주고 제주섬에 가둬놓고
섦과 죽음의 가시밭 세상 만들어냈으니
제주섬은 가난과 한숨에 흔들리고 날마다
흔들리는 제주섬 지키는 설문대할망은
제주섬 사람들 수천 년 살아온
전설이 되고 바람이 되고 영욕이되고
이어도를 꿈꾸는 꿈이 되고 노래가되고
5
오백 아들은 어머니 죽음 알고 캄캄하게
세상살이 절망이여 허망을 보았네
한라산 깊은 골로 들어가서
어머니 죽음 목놓아 통곡하고
눈물눈물 모아 눈물골을 만들어냈으니
그 눈물 흘러 정방, 천지연, 천제연 폭포가 되고
통곡하며 통고하다 토해된 핏방울들
한라산 철쭉꽃밭 철쭉꽃이 되고
울긋불긋 진달래꽃밭 진달래꽃이 되고
어머니만 부르며 어머니만 그리다가
바위로 굳어져 오백 나한이 되고
모두 하늘 아래 저주받은 세상
깊은 슬픔 삭이고 있으니 보아라
천고의 신비로움 띄엄띄엄
속세 떠나 영실 지어냈으니
세상 사람들 한라산 오르내리며
부끄러워라 세상살이 옷자락 이슬에 적시며
저마다 자기 죽움 찾아 돌아가느니
깊을수록 단순해지는 산 그림자
껌뻑껌벅 이승을 건너가느니
나는 그 앞에 서서
한 평생 번뇌를 씻듯
폭포 소리에 떠밀려 하얗게 부서지고 있다.
문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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