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아... 피뿌리풀
기후의 변화 탓에 이를 적응하지 못하고 사라져가는 식물들이 있다.
그런가 하면 엉뚱한 녀석들이 그
자리를 꿰차고 나타나기도 한다.
사과의 주산지가 대구였지만 지금은 충북을 거쳐 강원도까지 올라가는 중이고 하우스감귤은 이미 남해안 지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를 키우고 있다. 지구온난화 탓이다.
모슬포 부근이 주산지였던 자리돔은 독도 부근에서 보인다 하고 그런가 하면 보이지도
않던 참치가 제주 인근에서 많이 잡힌다고 한다.
그런데 그 기후 변화가 아니라 사람의 눈길과 손길과 발길에 사라져가는 식물들이
있다.
보이는대로 무분별하게 캐어가는 몰염치가 있는가 하면 소문만 들리면 순식간에 찾아가 씨를 말리는 파렴치가 그 주범이다.
야생의
꽃은 야생에서 그 가치가 있고 아름다움이 있다.
그 자리에 그냥 둠으로써 모두가 보고 즐길 수 있는 데도 혼자 이를 가지고, 즐기려는
이기심에 몰래, 혹은 넉살 좋게 가져가서는 키우기는 커녕 죽여버리는 게 다반사다. 그래서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후회하기보다는 다시 또
키워보려는 욕심을 불태우며 또 다른 사냥을 계획한다. 그것이 양절(攘竊)임은 아예 생각도 않으면서....
그러다가 놀토가 생기고
오름산행 인구가 엄청나게 늘어나면서 야생화의 수난은 시작되었다. 그중에도 꽃이 예쁘면서 귀하다고 여기는 꽃들은 여지없이 산행객들의 발길에
밟히고, 손길에 꺾이기 시작했다. 게다가 디지털카메라의 대중화와 스마트폰 시대가 열리면서 야생화는 또 다른 곤욕을 치르게 된다.
꽃을
예쁘게 찍겠다면서 주변의 다른 꽃과 풀을 모두 제거하는가 하면 같이 피어난 꽃도 시들거나 모양이 좋지않으면 가차없이 이를 제거해 버리고 심지어는
내가 찍은 사진과 같은 모양의 사진이 찍힌다면서 찍고난 후에는 아예 꽃을 꺾어버리거나 뽑아버리는 일마저 생기니 야생화는 점점 사라져갈
수밖에...
피뿌리풀은 10여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꽤 흔한 꽃이었다.
피뿌리풀은 세계적으로는 몽골, 중국, 시베리아, 네팔
등 추운 지방에서 자란다고 한다. 한반도에서는 황해도 이북에만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이른바 북방계식물에 해당된다. 그런 북방계 식물이
제주도에 자생하고 있는데 제주에서도 특히 동부지역 일부 오름의 초원지대에서만 한정적으로 자라고 있는 그 이유에 대해서는 속시원히 대답해주는
자료가 없다.
그런데 이제는 피뿌리풀이 가장 많이 보이던 아부오름에서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질 않는다.
최근 몇 년동안은
ㄴ오름 초입에서 겨우 몇 개체 피뿌리풀을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올 봄, 그 몇 개체를 또 누군가 캐어가고 말았다. 그래서 그 오름의
능선에서 또 다른 식구를 만날 수 있었지만 이 녀석들을 언제까지 만날 수 있을지는 누구도 장담하지 못한다.
산불감시원은 그나마 이를
보호하기 위하여 조그만 돌담을 쌓기도 하고, 지나는 사람들에게 쉽게 눈에 띄지 말라고 소나무 삭정이를 곁에 놓기도 했지만 감시원의 근무기간은
5월 중순이면 끝나고 만다.
굳이 산불감시원을 들먹이지 않아도 어차피 그의 눈길이 닿지않는 시간에 가져가버리면 아무런 대책이
없다.
어디 피뿌리풀 뿐이랴.
보춘화, 한라새우란, 닭의난초 등 야생란은 물론이고 곱다고, 귀하다고 소문이 난 들꽃들은
여지없이 수난을 당하고 만다.
꽃을 찾아가보면 혹은 너무 일러서, 혹은 너무 늦어서 그 반갑고 고운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없었기에
다음해를 기약하고 돌아서기도 하는데 그러고나서 다음해에는 맥 빠진 일이 어디 한 두 번이던가?
다음해는 고사하고 하루나 혹은 이틀 뒤에
찾아갔더니 사라져버리고 말았던 그 분노와 허탈의 경우가 심심치 않다.
피뿌리풀은 나에겐 더욱 특별한 꽃이다.
오름을 오르기
시작하여 5년쯤인가 되던 해의 돝오름 능선에서 만난 피뿌리풀에 홀딱 반해버리고는 그때부터 야생화에 관심을 갖게 되고 꽃사진까지 찍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피뿌리풀이 피어날 때는 어떻게든 찾아 나서게 되곤 한다. 피뿌리풀을 찾지 못하고 만나지 못하게 되면 나의 야생화 사랑도
마치 끝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 피뿌리풀."이 아니라 "오! 피뿌리풀."을 언제나 외치며 들꽃사랑의 마음을
언제까지나 이어갈 수 있기를 지정 바라는 마음.
그게 바로 이 봄의 가장 큰 소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