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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관덕정

속심해 2014. 4. 5. 21:10

 

 

 

 

도심의 소음 속에 묻혀버릴 법도 한데 여전히 고고한 관덕정은 세월을 뛰어넘는 웅장함으로 다시 제주인의 품으로 돌아왔다. 관덕정이 조선시대의 건축물이라고 단순히 생각한다면 한낱 정자에 지나지 않겠지만 제주인의 정신을 이곳에서 찾아낸다면 제주문화에 한걸음 다가가는 계기가 될 것이다.

 

올바른 심신을 수양하기 위한 연무관 “관덕정”.

관덕은 “평소에 마음을 바르게 하고 훌륭한 덕을 닦는다”는 뜻이며, 문무의 올바른 정신을 본받기 위해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숱한 세월을 이기고 돌하르방 4기가 묵묵히 이곳을 지키고 있으며 제를 지냈던 칠성단과 정치, 문화의 중심이었던 목관아지 바로 옆에서 오랜 세월 제주인의 삶과 역사를 지켜본 문화상징물이다.

 

관덕정은 신숙청이 세종 30년(1448)가을에 무예수련장으로 창건하였는데 이렇게 연무장으로 이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정사를 논하고, 잔치를 벌이고, 죄인을 다스리는 형장으로 이용하였다. 제주인의 생활문화의 중심에 위치하여 기쁨과 나눔의 장이 되었으며, 죄를 논하는 엄격한 법의 공간, 또는 항거의 소리가 크게 울려 퍼지는 자유 광장이 되기도 한 곳이 바로 관덕정이다.

 

웅장한 옛 모습을 드러낸 역사의 산증인.

기존의 현판은 안평대군의 글씨였는데 화재로 인해 유실되어 지금 걸려있는 것은 이산해의 필적이라고 한다. 일제하에 15척 이상 나온 처마가 2척 이상 잘리고, 제주도의 유려한 처마 곡선이 일본식 지붕으로 바뀌고, 흰 페인트를 칠한 문을 만들어 다는 등 관덕정의 원래 모습이 일제의 문화말살 정책에 의해 훼손되고 진면목이 왜곡되었다. 이를 해방 후에 대대적으로 해체하여 수리를 하였지만 본래의 모습을 살리지 못하였는데, 2003년부터 2년 8개월간의 철저한 역사적 고증에 의한 복원이 이루어져 비로소 제 모습을 찾은 관덕정이 자랑스러운 제주의 문화공간으로 제주인과 관광객의 아낌을 받게 되었다.

 

7점의 뛰어난 벽화와 유려한 처마곡선의 아름다움.

관덕정을 둘러 볼 때 눈여겨 볼 것은 관덕정 대들보 아래의 7점의 벽화이다. 퇴색되어 그 내용을 알기 힘들었던 벽화가 원래 모습대로 복원되어 각기 뛰어난 작품의 진가를 감상해 볼 수 있다. 각 7점의 내용은 여인들이 귤을 던지며 두보의 풍모를 흠모하는 그림, 심산유곡에서 바둑을 두는 선비들, 적벽대첩도, 고려 관원들이 수렵하는 모습, 거문고를 타는 제갈공명의 모습, 유방에게 연회를 베풀어 역습하려는 항우의 음모를 그린 모습, 십장생도 등으로 제각기 내용과 실제를 비교하며 감상한다면 더욱 묘미가 있을 것이다. 또한 제주처마의 특징인 긴 처마와 낙향이 탐라순력도에 근거하여 복원되었으므로 유려한 제주건축의 아름다움을 발견해보자.

 

“크고, 밝고, 아름답고, 격식을 얻어 진실로 온 고을의 장관을 이루었다”고 하는 관덕정이 이제야 제 모습을 찾아 제주인의 문화를 크고, 밝고, 아름답게 알려주게 되었다. 야간조명을 받은 관덕정은 더욱 위엄이 뿜어져 나오므로 늦은 시간에 관덕정을 찾아보는 것도 좋다.

 

 

관덕정앞에 세워진 왕방울 눈과 뭉툭한 코가 더욱 과장된 돌하르방. 

 

 

복원된 관덕정 처마의 유려한 모습.

 

 

야간에 조명이 비춰진 관덕정은 도심속 문화의 향기를 화려하게 만든다.

 

 

관덕정은 시내에 위치해 있어  산책을 할 수 있는 편안한 곳이 될 것이다.

 

 

자료 출처 : http://blog.daum.net/blueribbon

 

 

출처 : 자파리세상
글쓴이 : 자파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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