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돼지우리와 화장실 `통시`
제주의 생활과 뗄레야 뗄 수 없었고, 우리에게 추억을 남겨주기도 하는 통시가 우리의 기억 속에서
점점 잊혀져 가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올래나 마당에서 직접 보이지는 않았지만 열린 공간으로 제주인들의 생활 깊숙한 곳에 자리하여 생산과 소비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 왔던 ‘통시’
과거 제주인들의 생활은 항상 궁핍했다.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가기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며, 생활 속에서 절약하는 습관을 키워야만 했다. 그 방면에서 돼지는 더없이 좋은 가축이었다.
제주 마을 각 가정마다 하나씩 있었던 통시는 화장실과 돗통의 기능을 갖고 있었다. 집에 들어서면 부엌과 반대방향에 위치하였고, 한 두 마리씩 키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제주 신화 중에 <남선비 설화>에서 조왕신과 측간신(칙간신)은 처첩 사이로 사이가 좋지 않았기에 제주 사람들은 집안에서 통시와 부엌의 위치는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좋다고 한다. 통시의 신인 측간신은 계모가 남선비를 독차지하기 위해 꾀를 부리다 죽은 신이기 때문에 사소한 잘못에도 트집을 잡고 크게 화를 입히는 성격을 보인다. 그래서, 제주에서는 통시(화장실)를 함부로 다루지 않았다고 하며 동티 중 가장 무서운 동티를 측간동티라 부르고, 신구간이 아닐 때는 화장실의 돌멩이 하나라도 함부로 옮기지 못하게 하였다. 신구간(1년에 한번씩 지상의 모든 신들이 하늘로 올라가 부재기간이 되는 시기)에 통시의 위치를 옮기던가 그대로 두는 일이 다반사였다.
통시의 돼지 또한 집 안의 크고 작은 일에 꼭 필요했기 때문에 소홀히 다루지 않았는데 사람이 급할 때 찾는 화장실의 디딜팡(일을 보기 위해 양쪽 발을 딛는 곳) 위에는 지붕이 없지만 돼지가 쉴 수 있도록 하는 돼지막만큼은 지붕을 만들어 안락하게 쉴 공간을 마련 해 주었다.
돼지는 또 그 집안 주인의 정성 됨됨이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기도 하여 외부 사람이 방문했을 때는 “돼지를 곱게 키웠습니다.” 라고 칭찬하는 것이 곧 집주인을 칭찬하는 말이므로 기쁘게 받아들였다. 돼지는 가정에서 먹다 남은 음식을 비롯해 가리는 것이 없어서 돼지를 키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30년 전만 해도 화장실의 디딜팡에 앉아서 볼일을 보려 하면 돼지가 인분을 먹기 위해 자꾸 디딜팡 아래로 들어오려 했다. 그러면 볼일을 보는 사람은 한 손에 길다란 막대기를 들고 돼지를 쫓아야 하는데 만약 실수로 돼지 머리 위에 실례를 했을 경우, 돼지는 사정없이 머리를 흔들어 댄다. 그 다음에는 어떤 상황이 벌어지는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고, 동시에 웃음이 나온다.
제주에서 통시는 중요한 생산 기능을 갖고 있었으며, 올래나 마당에서 직접 보이지는 않았지만 열린 공간으로서 이웃이 방문해도 통시 가까이에서 돼지를 보며 잡담을 주고받을 정도로 친숙한 것이었다.
그밖에 통시는 집안 혹은 이웃과 동네의 큰일에 꼭 필요한 돼지가 있는 곳, 화산회토의 메마른 밭에 뿌려줄 거름을 만들어주는 곳, 생리작용이 급할 때 우리를 도와주는 곳, 제주 사람들 누구나 입었던 갈옷의 재료인 감이 풍성하게 열릴 수 있게 해 주는 곳이 바로 이 통시였다. 그러면서도 돼지에게 집을 만들어 주는 제주 사람들의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까지도 알아볼 수 있는 게 바로 제주의 통시이다.
제주인의 생활문화의 중심에 함께 했던 통시... 지금은 모두 현대식 화장실로 바뀌어 그 때의 자취를 볼 수 없지만, 민속촌박물관 등 옛 모습을 지켜나가는 곳에서는 찾아볼 수 있다. 제주의 생활과 뗄레야 뗄 수 없었고, 우리에게 추억을 남겨주기도 하는 통시가 우리의 기억 속에서 점점 잊혀져 가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 글/좌동열
* 촬영협조/ 제주민속촌박물관
☞ 자료 출처 : "제주몰" www.jejumal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