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천지연 용의 `여의주`
숨겨진 제주의 설화 - 천지연 용의 여의주'
The Myth of Cheonjiyeon Waterfalls
절개있는 여인에게 남긴 천지연 용의 "여의주"
세찬 폭포수를 떨구는 기암절벽, 울창한 천연보호림에 둘러싸여있는 천지연폭포.
선녀들이 노닐었던 연못이라고 전하는 이곳에 전해 내려오는 설화
옛날 이조 중엽쯤 일이다. 옛 명칭이 서귀진인 이곳 서귀포마을에는 얼굴이 어여쁘고 마음이 고우며 행실이 얌전하다고 소문이 난 순천이라는 처녀가 살고 있었다. 여러 동네 총각들이 그녀를 마음에 두었으며 그중 명문이라는 총각은 상사병이 걸릴 정도로 그녀를 흠모하였다. 하지만 순천 나이 열아홉살이 되자 부모님이 정해준 혼처인 이웃 마을 법환리로 시집을 가버렸다. 서귀진 총각들이 모두 서운해 하였고 그중 명문이는 커다란 절망에 빠져 생활이 형편없이 흐트러졌다. 술과 노름, 싸움만 일삼고 부모에게도 노름밑천을 대어달라고 행패를 부릴 정도로 점점 더 폐인에 가깝게 변해갔다.
한편 시집을 간 순천은 요조숙녀로서 여자의 도리를 다하는 가운데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였다. 시부모에 대한 효도와 시집 일가에 대한 예의범절이며, 남편에 대한 공경은 온 마을 사람들의 본이 되었다. 일가친척들은 물론 온 동리에서 소문난 며느리로 시부모와 시동기간에 칭찬이 자자하였고 남편의 사랑을 온몸에 받으며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가을날 순천은 햇곡식으로 빚은 술과 떡을 마련하여 오랫만에 친정나들이를 하였다. 그런데 그녀가 친정집에 가는 걸 명문이 멀리서 보고는 천지연입구에서 그녀가 돌아가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해질 무렵 친정집을 나서다보니 날이 으슥해져 빠른 걸음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는 순천이 천지연 폭포 바로 위에 이르렀을 때 기다리던 명문이 불쑥 나타나서는 그녀의 손을 잡고 애걸복걸하였다.
“난 당신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이오. 난 당신 없이는 죽어 버릴 작정이오."
눈빛까지 이상한 빛으로 이글거리는 명문을 보며 겁이 난 순천은 오들오들 떨었다.
“나는 이제 남의 아내가 된 몸이오. 이게 무슨 행패에요.”
“나는 이제 당신을 놓아줄 수 없어. 순천은 내 것이야."
남자의 목소리가 이상하게 변하면서 그의 입가에는 비웃는 듯한 웃음이 번졌다. 순천은 사태의 급박함을 느끼고는,
“이 손을 놔요. 그렇지 않으면 소리치겠어요."
눈을 부라리고는 남자를 향해 반항하며 말했다.
“이게 왜 이래. 여긴 지금 아무도 없어. 그리고 누구라도 나타나 내 일을 방해한다면 난 말야 너를 끌고 저 폭포로 뛰어내려 같이 죽을거야."
남자는 더욱 세게 여자를 붙들고 몇 번 흔들더니, 와락 순천을 껴안는 것이었다.
“악, 사람 살려요."
여자는 있는 힘을 다하여 비명을 질렀다. 그때였다. `우르릉"하는 소리와 함께 바로 아래 천지연 물에서 용 한 마리가 솟구쳐 오르더니 순식간에 여자를 붙들고 있는 명문이를 후다닥 낚아채어 하늘로 솟아오르는 것이었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깜빡 정신을 잃었다 깨어나 보니 붉은빛 영롱한 여의주가 순천의 발밑에 떨어져 있는 게 아닌가.
그녀는 여의주를 가지고 밤길을 걸어 시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그 저녁에 있었던 일을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여의주를 간직하고 있어서인지 그녀는 모든 일이 잘되기만 하였다. 집안이 차차 넉넉해 갔고, 아들, 딸을 많이 두었으며 아들들은 모두 똑똑하였다. 모든 일이 형통하자 그 집안에서나 일가에서는 이 모든 일이 며느리 덕이라고 칭송이 자자하였다고 한다.
순천이의 순수함! 진실된 마음으로 생활하였기에 모든 이의 사랑을 받고 천지연을 지킨 용의 아낌까지 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당장 눈앞에 귀한 여의주가 떨어지지 않더라도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 여의주보다 더한 행운이 따르는 하루하루를 만들 수 있으리라.
너무나 교과서적인 이야기지만 삶의 진실은 언제나 평범함 속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