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상사화
상사화/ 홍해리
내가
마음을 비워 네게로 가듯
너도 몸 버리고 마음만으로 내게로 오라
너는 내 자리를 비우고
나는 네 자리를 채우자
오며가며 만나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가는 길이 하나이기 때문
마음의 끝이 지고
산그늘 강물에 잠기우듯
그리움은 넘쳐 넘쳐 길을 끊나니
저문저문 저무는 강가에서
보라 저 물이 울며 가는 곳
멀고 먼 지름길 따라
곤비한 영혼 하나
낯설게 떠도는 것을
상사화/ 이해인
당신을
직접 뵙진 못했군요
기다림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가를
기다려보지 못진 이들은
잘 모릅니다
좋아하면서도
만나지 못하고
서로 어긋나는 안타까움을
어긋나보지 않은 이들은
잘 모릅니다
날마다 그리움으로 길어진 꽃을
내 분홍빛 애틋한 사랑은
언제까지 홀로여야 할까요?
오랜 세월
침묵 속에서
나는 당신께 말하는 법을 배웠고
어둠 속에서
위로 없이도 신뢰하는 법을
익혀왔습니다
죽어서라도 꼭
당신을 만나야지요
사랑은 죽음보다 강함을
오늘은 어제보다
더욱 믿으니까요
상사화/ 김길자
그대 향기 꽃비 내리듯
가슴에
촉촉이 스며듭니다
바람으로 떠돌던
많은 생각
오랜 침묵 속에
대화로 익히며
만나야 하는 기다림으로
위로 없이도
신뢰를 배웠지만
만나지 못하고
홀로 피다 집니다.
상사화 가슴 속으로 피다/ 이재현
뒤 돌아보면 등 굽은 겨울나무처럼
책갈피로 숨겨둔 그리움도 그렇게
눈 옴팡하여 웅크리고 있는 것인지
좀처럼 펴지지 않는 손가락을 굽혀 세던
천년 기다림의 날들을 마디마디 꺾어
하얀 뼈가 드러날 때까지 시샘으로
채 여물지 않은 종아리 툭 채며
바람은 좋게 마른 입술을 깨물어
그 눈물 고인 자리로 피어나는 꽃이
슬픈 전설의 상사화 이었을라
기다림은 까치발을 뜨는 것일까
진종일 길어진 목이 눈물 나게 아프더냐
네 가슴 내 가슴이 서로 애달프구나
마주 볼 수 없는 그 자상(自傷)이여
상사화 3/ 양전형
그리움은 맨 뒤에 피어나는 것
다 떠난 뒤
뜬구름 같은 기억이 작달비를 몰고 오는 날
알몸으로
그리움의 모양을 그려내는 것
다 버린 뒤
뜨거운 서러움이
작달비를 타고 내리는 늦여름
힘겹게 땡볕 뚫으며 자란 그리움을
마침내 피워 내는 것
지난 일은 묻혀야 아름다운 것
기다란 대궁 맨 끝까지
기어이
자홍색으로 다 울어버리는 것
그리고는 잊어버리는 것
아, 여섯 갈래 꽃잎으로 오려지는 이 가슴